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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텔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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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 [[파일:앙리 페로.jpg]] 주유고랜드 루이나군 연락사령부 작전참모 앙리 M. 페로 육군 중령(향년 44세). 동관 4층에 투숙하던 페로는 한 달 뒤인 5월 본국 복귀가 예정되어 있었다. 사건 당일 저녁 콜마르의 가족과 통화하면서 "다음 달이면 이 호텔 밥도 끝"이라고 말한 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그의 부인 마들렌 페로는 이후 루이나 측 유족회를 이끌었고, 2002년 폭약의 출처가 공개되자 "남편은 우리나라가 만들어 보낸 폭약에 죽었다"는 성명을 냈다. 주유고랜드 루이나군 군무원 엘렌 R. 마티외(향년 31세). 아랍어 통역사였던 마티외는 루이나군과 시디벨아베스 경찰 사이의 연락 업무를 맡았다. 호텔 직원 자녀들에게 주말마다 루이나어를 가르쳐 직원들 사이에서 '토요일 선생님'으로 불렸고, 사건 당일에도 저녁 수업을 마치고 객실로 올라간 직후 폭발이 일어났다. 플라자 시큐리티 서비스 직원 다니엘 K. 브륄(향년 38세). 해병대 부사관 출신으로 1995년 플라자 시큐리티 서비스에 입사해 루이나군 연락사령부 시설 경비를 맡았다. 유족은 회사가 직원들을 위험도 '높음'으로 평가된 기지 밖 호텔에 묵게 했다며 소송을 냈고, 2000년 비공개 조건으로 합의했다. [[파일:라일라 하다드.jpg]] 최연소 희생자 라일라 하다드(향년 19세). 나크시에 로스탐의 실향민 가정 출신으로,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1996년부터 호텔 세탁실에서 야간 근무를 했다. 폭발 지점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지하 세탁실에 있었다. 그녀가 내부자 바크리와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알려져 유고랜드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호텔 주방 조리장 김순례(향년 52세). 1964년 웨스타시아 지배기에 주방 보조로 들어와 33년 동안 영랑호텔의 주방을 지켰다. 직원들 사이에서 '호텔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루이나 장교들이 한국식 반찬을 따로 주문할 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폭발 당시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플로렌시아인 수자원 기술자 앙투안 L. 소렐(향년 47세). 플로렌시아 정부의 유고랜드 상수도 원조 사업에 파견되어 동관 2층에 투숙 중이었다. 루이나군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반 투숙객이었다. 함께 숨진 또 한 명의 제3국인은 라 마베라 국적의 직물 상인이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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